《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를 위한 이토록 굉장한 세계》
퓰리처상 수상 작가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 어린이 특별판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차별은 왜 반복되고 어떻게 생겨나는가
《경험의 멸종》
멸종 위기에 놓인 ‘인간다운 삶’을 구출하라
《예술이라는 일》
에밀리 디킨슨의 흔적을 담은 북마크
《잔소리탈출연구소 1. 집중력 도둑을 잡아라》
어크로스주니어의 첫 책!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를 위한 이토록 굉장한 세계》
퓰리처상 수상 작가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 어린이 특별판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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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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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탈출연구소 1. 집중력 도둑을 잡아라》
어크로스주니어의 첫 책!
이야기
전체 보기서로를 다듬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한 사람의 가능성이 조용히 자라난다
책 제목을 짓는 일은, 책 만드는 과정 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순간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예외였습니다. 한국어 판권을 계약한 뒤 처음 붙여둔 가제가 바로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 책은 가제가 곧 그대로 최종 제목이 된 셈입니다. 가제부터 지금의 제목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책 머리말에서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기 때문이었어요.초등학교 4학년이던 어느 날, 저자는 아버지의 출장으로 며칠 동안 다른 친구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그 집은 저녁 식탁이 곧 토론장이자 수학 교실이었습니다. 매일 식탁 앞에서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아버지가 즉석에서 내는 수학 문제를 풀어야 했죠. 친구의 아버지는 저자에게도 문제 하나를 던졌고, 그녀는 당황한 끝에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맙니다.편안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뒤, 저자는 '가족'이라는 환경이 한 사람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수학이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매일 저녁 식탁에서 수학문제를 풀었다면?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내 입장을 변호하는 데 익숙했다면?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종류의 요구는 하나의 축복이자 선물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은은한 압박을 느끼게 하는 짐이자 부담일까?"퓰리처상을 수상한 성공한 저널리스트가 된 저자는 결국 가족들 안에서 작동하는 가족의 역학, 다양한 알력과 영향력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하기로 합니다. 부모의 기대 또는 간섭이 자녀의 성취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이가 지닌 탁월함을 어떤 방식으로 자극해야 하는지, 가장 가까운 경쟁자이자 동료인 형제자매 관계는 어떻게 서로를 평가하고 격려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지, 그리고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각 가정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말입니다.처음으로 전체 원고를 다 읽은 날, 마음이 퍽 복잡해졌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어떤 책이 잘 팔릴까'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좀 더 노골적인 성공의 비밀(?)들이 담겨 있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랐거든요. 그러나 원고는 끝내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공에는 단 하나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고, 무엇을 얻으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잃기도 하는 것이 삶이라고요. 그렇지만 더 나은 삶을 향해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것,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영감을 자극하고, 지칠 때 기댈 수 있고, 서로의 날카로운 부분을 더 벼리거나 부드럽게 깎아나가면서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 이 책은 그렇게 서로를 다듬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한 사람의 가능성이 조용히 자라난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의 일로 남을 건
성수동에 가면 온갖 팝업스토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으리으리한 외형에 증정품도 많지만 나중에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팝업도 있고, 별거 없어 보이는데 의외로 재미있던 곳도 있지요.서울국제도서전에 어크로스가 부스를 낼 때마다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어떤 재미난 이벤트를 만들까’입니다. 출판사가 도서전에 참가하는 목적은 우리 회사의 책을 알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책만 가져갈 수는 없잖아요. 많은 출판사들이 굿즈를 중심으로 준비할 때, 우리는 체험형 이벤트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어크로스가 굿즈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다들 아시잖아요, 굿즈 맛집...?)특히 2년 전 ‘어크로스 일일 교정반’은 직원들도 놀랄 만큼 반응이 좋았습니다. 사실 편집자들은 늘상 하는 일이라 ‘재미’의 관점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거든요. 독자들에게 내가 읽는 책의 문장이 이런 과정을 거쳐 다듬어지고, 내가 읽고 싶고 따라 쓰고 싶은 문장으로 완성된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준 것이 흥행의 요인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할 거라는 전망에 ‘내 일자리는 안전한가’라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마케팅의 영역에서 95% 이상의 업무를 AI가 처리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그럼에도 여전히 마케터의 임무로 남을 건, 고객이 어떤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이겠지요. <AI마케터가 온다>를 만들면서 ‘이렇게까지 AI를 많이 활용한다고?’ 싶어 놀라면서도, 기술 발전에도 변하지 않을 인간의 일을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도서전에서는 어크로스도 AI를 활용한 체험형 이벤트를 마련하고 여러분을 기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연한 완벽주의자》라는 출간 제목을 정하기까지
《유연한 완벽주의자》라는 출간 제목을 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신도 혹시 완벽주의자?’라는 제목도 고려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나처럼 허술한 사람이 무슨 완벽주의자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저자 엘런 헨드릭슨은 끝끝내 자신을 괜찮다고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경직된 완벽주의’의 증상이라고 말합니다. ‘나처럼 허술한 사람이…’, ‘나처럼 엉망인 사람이…’, ‘나처럼 별로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오히려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요.이 책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가 쓴 책이지만 사실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완벽주의자들은 매 순간을 자기증명의 시험으로 느낄 때가 많은데, 시험공화국의 한국인들은 실제로 많은 시험을 겪으면서 사니까요. 또 친척 모임을 할 때마다 ‘살쪘네’라는 말을 듣는다면 ‘내가 자기관리를 못했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수많은 책임과 역할에 익숙한 K장녀들도 마음속에 가혹한 비평가를 두고 있을 테죠. 내 안에 깊이 박힌 비현실적인 기준, 그것을 달성하지 못할 때마다 쏟아내는 가혹한 비난. 우리는 언제나 ‘나는 아직 부족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습니다. 《유연한 완벽주의자》는 자기비판, 실패가 두려워 일을 미루는 습관,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정도로 실수를 되새기는 버릇 등 완벽주의자의 대표적 성향 7가지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생각과 행동의 간단한 전환을 통해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는 ‘유연한 완벽주의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죠. 완벽주의와의 행복한 공존법을 알려주는 심리학 도서이지만,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고 말하거나 ‘사회적으로 강요된 강박’을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있지요. 자신을 몰아붙여야 하는 세상에서 지금의 충분한 나를 사랑하고, 지키겠다는 당당한 선언 같은 이 책과 함께 유연한 완벽주의를 배워보면 어떨까요.
노키즈존에서 노차이니즈존까지 : 예견된 차별
성수동의 한 카페가 ‘노차이니즈존’을 선언했습니다. ‘국적’을 가려 손님을 받겠다는 이 방침은 10년 전 이른바 ‘노키즈존’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 느꼈던 불쾌한 예감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편집한 홍성수 교수의 책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에서 저자는 줄곧 경고합니다. 누군가의 출입을 제한하는 일이 ‘사장의 자유’로 정당화되는 순간, 차별은 하나의 사회적 언어가 되고, 그 언어는 전염처럼 퍼져나간다고. 오늘 한국의 혐중 시위와 ‘노차이니즈존’은 바로 그 예언이 현실화 되버린거 같습니다. (너무 빠르네요...)지금 혐중집회가 열리는 거리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차별과 혐오표현의 방패로 소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고 홍성수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특정 국적을 이유로 손님을 거부하는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다음엔 장애인·여성·노인·성소수자를 거부하는 자유도 정당화되겠죠. 그건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폭력입니다.이번 책을 만들면서 한국의 혐중 정서에 대해 자주 생각해봤습니다. 뿌리가 뭘까. 역사?라기엔 그 양상이 왜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격렬하고 과격하게 변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결국은 경제적 불안, 정치적 위기, 사회적 피로가 누적됐고 사람들이 손쉬운 희생양을 찾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코로나19 때의 반중 정서, 12·3 계엄 사태 이후의 ‘중국인 간첩설’이 그 전형이었죠.혐오는 언제나 ‘진짜 문제를 가리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홍성수 교수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같습니다. 타인을 향한 증오로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고, 결국 우리 스스로의 존엄이 훼손됩니다. 곧 “노차이니즈존”을 비판하는 일은 중국인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차별을 방치하는 사회는 언젠가 그 차별의 대상이 ‘나’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다면... (너무 겁주는 거 같은가요...)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시민의 상식, 그리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의 최소한의 울타리라고 생각합니다.편집자 단상을 써야 하는데, 쓰다 보니 현안에 대해 칼럼이 돼 버렸네요. 어크로스 독자님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의견을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