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먼저 빠져든 100년의 퍼즐, 《마약 전쟁》
25-09-17
저에게 논픽션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와도 같습니다. 알고 있던 단편적인 지식이나 사실, 역사의 조각들을 맞추어 우리 사회의 좀 더 큰 그림을 이해하는 일. 게다가 시간과 집중력도 요구되고요. 제가 그동안 알았던 '마약과의 전쟁'은, 흔히 척결해야 할 대상을 향해 'OO과의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관용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의 첫 책이 '마약'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오오...), 그런데 그 책을 제가 맡게 된다는 걸 알고서(네네...저요?)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이란 표현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약 사범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공표하며 쓰인 용어란 것을요. 그래서 처음 이 책의 원고를 받고서는, 아 그럼 대충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겠군 하고 시작했는데...
웬걸... 저자 요한 하리는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00년대 초에 저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인물 '해리 앤슬링어'의 삶을 들려주기 시작해요. 어린 시절 마약에 취한 여성의 절규하는 비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소년이 미국 연방마약국의 초대 국장이 되어 '마약 전쟁'을 세계화시킨 여정, 그리고 마약과 마약중독자들을 혐오했던 것만큼 유색인종 또한 혐오했던 그가 흑인과 멕시코인 등을 통제하기 위해서 마약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 앤슬링어의 표적이 되어 치료와 회복의 기회는 박탈당한 채 마약 중독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우리가 모두 아는 재즈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기구한 인생.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유통되던 마약이 금지되자, 불법으로 마약을 유통하며 뉴욕 일대를 접수한 마약상의 이야기까지. 마약 단속자, 중독자, 판매자라는 세 유형의 인물을 통해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반전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듣다가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게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와 똑같은데? 하고 말이죠.
앞서 설명한 소설처럼 빠져드는 전개는, 《마약 전쟁》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삼분의 일밖에 안됩니다. 탐사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는 시계를 현재로 되돌려 마약과의 전쟁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장소들 그리고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세계 곳곳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거든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KKK단에 잠입한 경찰관의 이야기, 마약 복용을 처음으로 비범죄화한 포르투갈의 사례... 원고를 읽으며 열심히 퍼즐 맞추기를 했더니,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들이 이해되면서 '세상에 하나의 진실은 없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마약 범죄는 왜 구조적으로 줄어들지 않는지, 우리는 왜 계속 이 전쟁에서 실패하고 있는지 그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